글쎄 몇주전에, 금요일밤엔 볼게 없어...를 중얼거리며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가 어쩐지 화면도 이쁘고 내용도 잔잔한듯한 드라마를 한편 봤다. 뭐지? 베스트극장같은 단편인가..? 하면서 끝까지 봤는데 전후 내용을 하나도 모르다보니 되게 잔잔하고 서정적인 풍경만 잔뜩 봐버린듯 해서 무슨 단편드라마 내용이 저렇담? 했었다. 그런데- 한편이 끝나고 나니 후편이 연속방영된다. 사실은 후편도 아니고 벌써 8회분인가가 방송된 중편드라마?! 깜짝 놀랐다.
소리소문없이 방영중이던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드라마는 모두가 회식과 술약속으로 귀가가 늦어질만한 금요일밤에 연속2편 편성된 프리미엄 드라마였던 것이었던 것이다.
<처음 내 눈을 사로잡았던 싱그러운 장면↑ 둘이 참 잘어울려서 어떤 사이인가 했더니만..>신문에 연재되던 인기소설을 드라마화 한것이라는데, 처음엔 제목이 내용과 너무 안어울려서 안뜬게 아닐까 싶었다. 굳이 내멋대로 지어보자면 서른한살의 일기나, 새콤달콤 연애일기 정도?(ㅋㅋ..나의 네이밍 센스가 이렇지, 뭐..)
뒤늦게 부랴부랴 1편부터 구해봤는데, 처음 봤던 8회보다 훨씬...너무나 훨씬 좋았다. 그래서인지 이후 이야기가 좀 늘어지는듯도 하고, 은수(최강희)와 영수(이선균)가 다시 만나는 설정에서는 김까지 새는듯 했다.;;
내이름은 김삼순 이후로 30대 여성을 타겟으로 삼는 드라마들은 거의 비슷한 분위기였다. 세파에 어느정도 물도 들었고, 그래도 아직 결혼과 연애의 환상도 지녔고, 중간인같은 애매한 나이대. 전문직이며 성격은 시원시원. 때론 억척스럽기도 하나 마음한켠에 여린부분을 감추고 있는..뭐 그런 캐릭터. 삼순이의 대히트 이후로 계보를 잇는 드라마들이 속속 나왔으나 이미 우려먹을대로 우려먹어서 신선하기가 힘들었다. 그나마 '달자의 봄'정도가 색달랐달까..(이후 '독신천하'란 SBS드라마가 있었는데, 내용은 꽤 괜찮았으나 시청률이 낮아 조기종영하기도..)
드라마의 기본 얼개는 이렇다. 7살 연하의 애인(태오-지현우)과 사귀고 동거까지 하게 된 31세의 출판사 에디터 은수.
연하의 애인은 너무나 낭만적이고 순수한 영화청년이다. 연애하면서 여자가 꿈꾸는 모든것을 태오로부터 받지만 두근거리고 설레이는것과는 별개로 매번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다. 태오는 태오대로 꿈을 위해 현실을 담보잡고 있는 아이. 다분히 세속적이 된 은수는 꿈을 쫓는 연하애인이 좋기도 하지만 답답하기도 하다.
그러던중 회사 상사의 소개로 만난 영수씨는 7살 연상의 사업가로, 차분하고 안정적이긴 하지만 웬지 너무 심심한 남자. 38세의 나이만큼이나 깊이 파고들수 없는 단단한 껍질을 안고있는 이 비밀의 남자는, 웰빙먹거리 회사의 CEO인데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CEO의 이미지가 결코 아니다.(그래서 더 멋져부러~!) 여성이라면 누구나 꿈꿀법한 신분상승의 절대기회! 게다가 이 남자는 은수에게 호감까지 갖고있지 않은가!
이렇게 두 남자 사이에서 야릇한 재미와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던 은수는, 그래도 역시 먼저 만난 태오를 택하게 된다. 두사람의 연애시간은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리얼하다. 사실 지현우의 "자기는~~해요" 이런 대사는 지금 들어도 좀 간지럽다. 어린데다가 영화를 공부하는 청년이라 자연스럽게 지닌 낭만일까.. 그래도 이제 나이 지긋한 나는, 지현우같은 탱탱청년보다는 이선균처럼 차분하고, 심심하기는해도 가슴속에 고통과 방황의 기억도 고스란히 지닌 축쳐진 어깨의 중년남성의 매력에 끌린다.^^;
무엇보다도 이선균이 눈에띈다. 표정이라든가 분위기가 이전의 어떤 드라마에서도 본적없는 캐릭터같다.
처음 오은수가 영수를 만난 감상을 이렇게 표현한다. '반만 웃는 사람..'.
나도 그렇게 봤기때문에 그대사에서 정말 깜짝 놀랐다. 아..저렇게 웃는 배우가 또 있었는데...누구더라...크로넨버그 영화에 나왔던 데이빗..스패이더가 바로 그랬다!!
그렇게 대충 웃는 남자가 서로 마음을 열고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할때쯤이면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다. 이럴땐 여느 작품에서나 보아왔던 이선균의 모습. 특히 나는 그가 그의 회사이름'후레쉬캣'의 모토가 된 회색 고양이를 안고 눈을 마주보며 얘기하는 장면이 너무 좋은데, 자주 나오진 않는다.^^;
그리고 은수엄마 김혜옥 여사의 연기또한 일품! 김지영, 나문희 여사에 이어 단 1분이면 나를 울게 만들수 있는 연기여왕님의 탄생이다. 스토리, 연출, 등장인물, 연기, 미장센이 전부다 꽝이면서도 시청률만큼은 1위를 고수했던 얼마전 종영된 일일드라마에서도 김혜옥여사의 연기만큼은 빛이 났다. '가족의 탄생'에서도 참 좋았는데.. 카랑카랑 하면서도 정감어린 목소리로 은수를 빤히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엄마의 모습은, 엄마도 꿈을 꾸는 여성이라는걸 여실히 보여준다. 누군들 불행하게 살고싶을까..
은수의 친구들도 하나같이 나름의 역사를 지닌 아이들이라 빼놓을수 없다.
담담하게, 성급하지 않게, 하고싶은 이야기를 조곤조곤 들려주는 섬세하고 세련된 드라마..
이런 드라마를 어째서 금요일 밤으로 편성하냔말이다.(월화수목..당췌 마음에 드는 드라마가 없는 요즈음이다.)
좀더 많은 여성들이 이 드라마를 접한다면 분명 빠져들텐데..
따뜻한 색감의 조명과 아기자기한 소품들, 최강희의 패션마저도 눈을떼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과 매력 충만한 드라마이다.